다음은 미국 현지 시간으로 2007년 3월 8일 아침부터 밤까지 있었던 일이다.

2007.03.08 (목)

시애틀 타코마 공항의 무빙워크에 몸을 의지한 채 천장에 매달린 안내판을 바라 보았다.
두둥. Immigrant(이민국).
입국심사를 하기 위해 가는 길이다.

2005년에 왔을 때 생각이 난다. 그땐 사실 입국심사 받으려고 줄 서 있는데 두근두근하더라.
그거 있잖은가. 군복무시절 아무 잘못한거 없어도 헌병만 보면 괜히 주눅이 든다.
더군다나 솰라솰라~~ 버터로 충만한 말들을 알아 들을 수 있을까... 이런 걱정 안할 수 있겠는가.
그때엔 심사관이 얘기하는 when과 where를 구분하지 못해서 상당히 당황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육열이라면 하늘을 찌르는 대한민국에서 중학교때부터 영어공부했는데.. 이런!

그러나 이번엔 분명히 달랐다.
2년전보다 상황이 복잡했다. 왜냐 체류기간도 길었고 중간 경유지가 여러군데고 출국하는 공항은 여기가 아니라 LA 공항이다.
음..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 그러했다.
더군다나 라스베이거스에도 들릴꺼라고 하자.. 심사관이 '오. 돈 많이 벌길 바란다'며 슬롯머쉰 당기는 동작을 취해준다. 지난 번 보다는 백배는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래.. 사실 이 때까지만해도 내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여행 경비는 뽑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가졌었다.  그 처참했던 결과는 나중에 라스베이거스 편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자.

어쨌거나 그동안 WSI 학원 열심히 다녔던 게 도움이 되었던거 같다.
가뿐하게 입국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으러 baggage claim으로 향했다.
쫄지 말라. 터미네이터와 같은 표정을 가진 건장한 남자에게도 말을 걸면 애기같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얘기를 잘 들어주고 얘기해주고 그러더란 말이다.
어학연수 오면 최소한 그런 여유는 얻어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할 무렵 난 세관을 통과하고 공항 라운지로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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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이제 막 시애틀은 출근하는 차량으로 붐빌 러시아워이다.
MVP 서밋 일정이 시작되는 3/11(월) 까지는 예전 회사 동료였던 진태씨 집에 머무르기로 했다.
마침 자동로밍된 핸드폰이 울린다. 진태씨다.
헐.. 벌써 출근을 해서 사무실에 있다고 하더니 마중을 나오겠다고 한다.
평일 아침에 그것도 출근길로 한참 붐빌 시간인데.. 30분이면 도착한다고 굳이 나오겠다고 한다. 난 정말 혼자 찾아 갈 수 있다고 한사코 말렸다.. 사실이다.

진태씨가 도착하기를 공항 라운지에서 기다리다가 여기 저기 서성거리면서 구경을 했다.
낯익은 메트로 버스 표지판이 보인다.
나중에 공항으로 돌아올 때 이 버스를 타야될지 모른다. 뚫어져라 버스 번호를 쳐다본다. 그러나 외워질리 만무하다.

앗.. 그러다가 드디어 진태씨를 공항에서 만났다. (아마 혼다 civic을 몰고 왔었던가..?)
일리노이 번호판을 달고 있다. 여기서 유학생활 할 때 장만한 차라고 하는데 서부에 위치한 마이크로소프트에 근무하기 위해 이 차를 끌고 동부에서 이 곳까지 대륙횡단을 했다고 한다.
정말 반가웠다. 거의 4년만에 멀리 이국땅에서 재회한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 반가운 나머지 카메라 초점이 맞지 않았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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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공항을 출발하여 차는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기 시작한 진태씨와 그동안 지내온 많은 얘기들을 나눴다.
나도 미서부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면 한국마이크로소프트로 이직하게 될 예정이었기에 주로 회사 돌아가는 얘기를 많이 나눴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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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꾸물꾸물했다.
겨울내내 비가 내리는 우기에서 벗어나려는 시기이긴 했지만.. 그래도 거의 매일 비가 온다고 한다.
2005년에는 우기가 시작되는 시점에 왔었는데 이번엔 끝무렵에 찾았구나.
여름에 찾게 되면 진태씨랑 캠핑이나 카약과 같은 아웃도어 아웃팅을 꼭 하자고 약속했다.

고속도로를 자유로 달리듯이 내달려서 부자동네인 벨뷰(Bellevue)를 지나..
마이크로소프트가 위치한 레드몬드(Redmond)에 도착했다.
일단 진태씨 집에 짐을 풀고 여독을 풀기로 했다.
미국의 주택은 대부분 이렇게 나무로 지어져 있다. 그래서 집안 가득 특유의 나무 내음이 가득하다.
아늑한 분위기가 있지만 반면 층간소음은 좀 심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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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태씨는 다시 사무실로 향했고.. 난 샤워를 하고 인터넷에 접속해서 메일 확인을 하다가
그냥 그대로 곯아 떨어졌다.
38시간 동안 뜬 눈으로 있었으니 나의 낮잠을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었을 것이다.

배고픔도 잊고.. 집 떠나 미국에 와 있다는 것도 잊고.. 누가 와서 업고 가도 모를만큼 깊은 잠에 빠졌다.
파죽지세라고 해야 하나. 잠을 자도 자도 절대로 깨지 않을 듯한 굳은 의지로 단호한 자세로 미친 듯이 잤다.
시애틀의 잠 못 깨는 낮.

꿈 속에는 석호필이 형과 함께 유유히 해리포터 빗자루를 타고 날아서 감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렇다. 완벽한 시차적응의 실패였다.

해질 무렵에야 겨우 잠에서 깼다.
진태씨와 함께 근처 식당에서 데리야끼를 사먹었다. 맛있었다.

그리곤 밤 드라이브에 나섰다.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시애틀 다운타운을 지나 야경 좋기로 유명한 알키키 해변(Alkiki beach)에 도착했다.
여행책자에서 봤을 땐 무슨 해수욕장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냥 놀이터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시애틀 다운타운의 야경을 촬영하기 위해 삼각대를 꺼냈다.

아.. 야간촬영을 큰 맘 먹고 구입한 시그마 30mm F1.4 렌즈의 위력을 보여줄 시간이 온 것이다.
너의 능력을 보여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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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흑.. 삼식이(30mm F1.4) 렌즈의 고질병. 초점이 맞지 않는다. 후핀 현상이다.
삼각대가 무슨 소용이람. 그냥 번들렌즈로 찍을 것을..

아.. 눈 앞의 멋진 광경을 이렇게 놓치고 마는 구나.

다시 진태씨 집으로 와서 감자칩과 맥주와 함께 못다한 얘기를 나눴다.
그렇게 시애틀에서의 첫날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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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oen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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