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4년 1월에 발매된 서태지 7집에 대해 음반평을 쓴 것이며 사보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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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울트라 매니아


그렇다. 본인은 서태지 매니아이다. 서태지 신드롬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난 알아요’가 발표된 1992년부터 지금까지 십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타가 공인하는 서태지 매니아였다. 노래엔 별로 소질이 없지만 노래방에서 다른 사람이 서태지 곡을 부르려 하면 마이크 뺏어서 내가 불러야만 직성이 풀릴 정도로 좋아한다. 그런 서태지가 2004년 1월, 7번째 앨범으로 나를 또 다시 감동시켰다.

서태지와 나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이 발표된 1992년에 난 부산의 모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중1때부터 듣기 시작한 Rock 음악에 심취해 있었고 친구들과 아마추어 밴드를 결성했던 시기였다. 나른했던 토요일 오후 TV를 통해 ‘난 알아요’를 처음 듣게 되었는데 뭐라 정의할 수 없는 묘한 음악에 전율을 느꼈다. 정말 당시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군입대전 난 대학시절 대부분의 시간은 ‘Naked’라는 교내 락밴드에서 보냈다. 찢어진 청바지에 항상 기타를 매고 캠퍼스의 자유로움을 만끽했던 이 시기에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과 4집을 만나게 되었다. 3집은 서태지의 음악 근간이 되는 Rock적인 요소가 한층 더 가미된 앨범이었고 4집에서는 ‘Come back home’을 통해 갱스터 랩이라는 음악 접할 수 있었다. 학교내 공연 때 ‘교실이데아’와 ‘필승’을 연주했었던 때가 기억난다.



1996년 1월. 국가의 부름을 받고 추운 겨울 훈련소에 입소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되었다는 소식을 친구 녀석의 편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조교에게 사실이냐고 물어봤다가 ‘치약 뚜껑에 머리박기’라는 최고 난이도의 얼차려를 받았다. 1998년 제대 후 사회에 적응하고 있을 무렵에 서태지가 5집 앨범이 발매됐다. 해체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고 매스컴과의 접촉을 끊고 일체의 근황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발매된 앨범이었다.

2년 후인 2000년, ‘울트라맨이야’가 포함된 6집과 함께 서태지가 귀국해서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했다. 공식사이트인 서태지닷컴(www.seotaiji.com)의 오픈, ETPFEST라는 대형 락 페스티벌 개최, 서태지 컴패니의 출범이 차례로 이뤄지면서 서태지와 팬들이 직접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채널이 구축된 시기이다.


2004년 1월 말. 7번째 앨범으로 돌아온 서태지. 그의 음악을 여의도 사옥으로 이전한 안랩에서 만나게 되었다. 택배로 배달된 상자를 뜯으면서 생각했다. 이번엔 과연 어떤 음악일까. 이번에도 나의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을까. 한껏 부풀은 기대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첫번째 트랙을 듣기 시작했다.

서태지 그 7번째 이야기? Issue에 중독되다

서태지는 3년여 동안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준비한 끝에 ‘7th Issue’ 앨범을 가지고 돌아왔다.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이후 그의 음악적 방황과 끝없는 물음에 대한 답을 내린 것일까. 이번 앨범에는 그가 하고 싶었던 음악과 팬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음악은 바로 이것이다라는 자신감과 명쾌함이 느껴진다. 앨범 전체가 하나의 곡처럼 느껴질 정도로 꽉 찬 구성을 보이고 있는데 곡마다 지독할 만큼의 완벽함을 추구한 그의 노력이 스며들어 있다.

이번 7집은 참으로 묘한 앨범이다. 처음에는 많은 곡이 유사한 코드 진행을 하고 있어 나른하고도 몽롱한 느낌이 들었다. ‘Heffy End’를 제외하고는 크게 와 닿는 노래가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서태지 7집을 들은 이후부터는 다른 음악을 거의 들을 수가 없었다. 서서히 각 곡들의 매력이 느껴졌고 어느 순간은 난해한 느낌이 들기도 하더니 어느새 서태지 7집에 중독되어 버린 것이다. 앨범이 출시된 지 두 달이 지났건만 지금도 귓가엔 항상 그의 음악이 맴돌고 있다.

이번 앨범의 러닝타임은 공교롭게도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 앨범과 동일한 33분 33초. 또한 7집에는 이전 앨범에서의 음원이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데, 락음악을 기반으로 테크노, 힙합, 얼터너티브, 핌프 락, 하드코어와 같은 다양한 음악과의 접목을 시도했던 지난 13년간의 흔적을 몰래 결집시킨 재기발랄함이 느껴지는 부분이다.

서태지는 7집 앨범 발표 후 가졌던 기자회견에서 이번 앨범을 ‘감성적인 코어 음악’이라고 정의한 것은 단지 보컬의 멜로디 라인이 돋보이는 곡 구성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팬들에 대한 그의 감성이 스며들어 있음을 암시한 것 같다. 이러한 점은 각 곡들의 가사 내용에서 느껴지는데, 표면적으로 들어나는 내용은 모두 다르지만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이 있음에도 은둔했어야 했던 지난 수년 간의 방황에 대한 자신의 내면적인 반성의 뜻이 중의적으로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토커의 사랑 얘기를 다룬 ‘Heffy End’는 팬들에게서 돌아섰던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내용으로, ‘로보트’에서는 상업적으로 변질되어 음악을 만드는 로보트가 되어 버린 자신에 대한 지난 날의 아픔을 표현하고 있다. ‘Live Wire’에서는 자신이 처음 음악을 접할 때의 설렜던 기억을 바탕으로 앞으로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겠다는 의지를, ‘10월 04일’에서는 팬들의 입장에서 보는 서태지에 대한 기억을, 마지막 접속곡인 ‘Zero’와 ‘Outro’에서는 그 동안의 여정을 정리하고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서태지의 의지가 담겨있다.

매니아들과 보다 가까이

흔히 서태지 팬들은 그를 ‘지존(至尊)’이라 부른다. 여전히 앳띤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느새 그의 나이도 서른이 훌쩍 넘어버렸다. 그의 음악과 함께 청소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은 이젠 이 사회의 역군으로서 가정을 이끌어 가는 주부로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나이와는 상관없이 여전히 ‘서태지’라는 생각만으로 가슴 설레던 10년 전의 마음을 잃지 않고 있다. 늘 새롭고 보다 발전된 음악으로 팬들의 기대와 음악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 주었던 그의 노력이 10년이 지난 후에도 변치 않고 계속 되길 바란다.

4집 이후 대중매체와 단절했던 서태지는 이번 앨범을 통해서는 보다 팬들과 가까이 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보이고 있다. 최근에 TV 토크쇼에 출연하는가 하면 10년만에 KBS 무대에서 사전심의를 당했던 ‘시대유감’을 부르는 통쾌한 모습을 공중파에서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앞으로 팬들 앞에서 보다 가까이 서있는 인간 ‘정현철’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게 나의 작은 바램이다.


Posted by noen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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